(스포일러 포함!!)
연극의 제목인 킬롤로지는 극중에서 판매되는 살인 게임의 이름이다.
이 연극은 무분별한 폭력적, 자극적 콘텐츠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문제를 조명하는 사회고발적 성격을 갖는다
데이비는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으로,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에 살다가 살인 사건의 타겟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데이비가 살해당한 것 뿐이 아니다. 폴이 개발한 '킬롤로지'라는 게임이 크게 흥행하며 '고문'을 콘텐츠로 느끼게 된 불량배들이 데이비를 고문 끝에 살해하고 고문중인 장면을 영상으로까지 남긴 것이다.
그의 아버지인 알란은 이에 크게 분노하여 게임 제작자인 폴에게 복수하고자 찾아가게 된다.
이 연극을 보며 요즘 보는 뉴스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친족을 칼로 죽이고, 연인을, 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한 뉴스들. 물론 한국 사회의 남성 살인범에 대한 유한 판결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이에 미디어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과거에 비해 '몹'을 잡는 게 아닌 플레이어와 같은 사람 형태의 누군가를 죽이거나 폭력을 휘둘러 재화를 탈취해 진행하는 수많은 게임들이 메이저하게 소비되고 있다. 사실 이 연극에서는 '킬롤로지'라는 게임으로 대표되었지만, 비단 게임 뿐만이 아니라 유튜브 등 스낵형 콘텐츠 전반에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자극적인지'가 셀링 포인트가 되었다. 그 속에서 폭력과 혐오는 그냥 웃기고 재미있는 콘텐츠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진지충','씹선비'로 여겨진다. 1인 창작자가 흔해진 시대에, 내 콘텐츠를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만드느냐에 주목도가 갈리게 되면서 경쟁은 더욱 일차원적이고 납작해졌다. 물론 폴의 말대로 '게임은 게임'이다. 그 게임을 하고 이상해졌다면 그건 그놈이 '원래 이상한 놈'인게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뜨는 살인사건의 범인들이 대체로 이런 콘텐츠의 주 소비층인 젊은 남성인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자극적인 콘텐츠 생산과 소비 경쟁에 내면의 도덕성은 무뎌질 수 있다. 이 극에서는 그런 '도덕성 마모'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 너무나 많이 나온 이런 게임들을 이제 와서 규제할 순 없다. 하지만 사회는 이 게임들을 '어떻게 소비되게'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다만 항상 연극열전의 이런 사회고발적 성격을 띈 연극에서 느낀 아쉬움이 킬롤로지에서도 느껴졌다. 열전에서는 상업연극을 지향하면서도 렁스, 마우스피스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말하는 극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연극의 대중화를 목표하면서 쉽게 팔 수 있는 퀴어 셀링 극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들을 가져오는 것은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하고 응원한다. 다만 대중성에 더 큰 방점을 두다 보니 열전의 극들은 단지 '문제 제기'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킬롤로지도 그랬다. "무분별한 폭력 콘텐츠의 노출이 정말 문제적입니다." 까지만 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지 못하는 극이었다. 하지만 날카로움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기에 각각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텍스트들을 골라 오는 것이리라.
이 연극은 대부분 세 사람의 독백이 계속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독백은 관객이 쉽게 지루해질 수 있기 때문에 대사를 정말 매력적으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이 구성이 독특하고 마음에 들었다. 각 배우만의 호흡과 대사톤을 통해 느껴지는 인물 해석을 좋아하는지라 대본집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배우 얘기를 해 보자면, 동구 데이비의 톤이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툭 던지듯 하는 대사 속의 외로움이 인상적이었다. 불량 청소년이라기보다, 어떻게든 누구에게든 관심을 한 번 받고 싶었던 아이. 예전 열전 극을 하던 장율 배우에게서 느꼈던 섬세한 감정 결이 느껴져서 좋았다. 동구 데이비의 외로움으로 상홍알란도, 주환폴도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기대하는 것이 없었던 데이비. 메이시를 데리고 집을 나선 후 부모를 포함하여 그의 세상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외로웠고, 그래서 불특정 타인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관심을 갈구했다. 이 외로움이 아들을 정말 사랑하지만, 정작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아버지의 공허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알란은 '데이비'가 정확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기억에 남아 있는 아이의 어린 시절과, 그가 죽을 때 끔찍하게 고통받았다는 사실 뿐이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후회와 복수심이고, 데이비는 정말 작은 기억의 파편으로 이상적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상상할 씨앗이 된다. 그는 아이의 부모이자 대변인이자 투사인데도 한편으로는 그게 '결과적으로 본인은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음'에서 오는 필사적인 속죄 또는 변명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 극에는 명확한 대상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인물이 없다. 폴도 마찬가지로 '나를 인정해 줄' 허상의 아버지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이 페어를 볼 때 느껴지는 것은, 극의 주제와 더불어 대상 없는 감정으로 미어터지는 공간 안에서의 막막함, 공허감,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관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어 즐거웠다.
추가로, 주환 폴이 특히 좋았던 점은 폴에게 '배우 본인의 동정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얘도 사실 불쌍한 녀석이었어, 사실 이런 정신병이... 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보여줬다. 에단 씬의 "저거 치워버려"에서 나쁜 일.이라고 사전에 배우에게서 판단된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을 슬퍼한다는 느낌이라서 정말 뜨악한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의 페어가 전체적으로 좋은 통일감을 주었던 것 같다. 아, 슴슴함이란!
(+ 근데 폴 수트는 대체 왜 그런 동묘핏인지 알 수가 없는... 재벌 설정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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